다양한 인기명소과 관광지가 가득한 아름다운 순천에 오셔서
몸도 마음도 힐링하세요.
뜰애펜션 주변에는 많은 관광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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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와온해변 (차량20분)
- 동쪽으로는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 남서쪽으로는 고흥반도와 순천만에 인접한 해변으로, 순천만의 동쪽 끄트머리인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 와온마을 앞바다에 있다. 해변의 길이는 약 3km이다.
해변 앞바다에는 솔섬이라 불리는 작은 무인도가 있다. 이 섬은 학이 납작하게 엎드린 모양이라 하여 학섬이라고도 하고, 밥상을 엎어놓은 것 같다 하여 상(床)섬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섬 안에 주막이 있어 뻘배(꼬막을 잡을 때 쓰는 널)를 타고 조업을 나갔던 어부들이 목을 축이고 돌아왔다고 한다.
와온마을은 전형적인 작은 어촌마을로 와온해변 앞바다에는 짱뚱어, 새꼬막, 숭어, 맛, 찔렁게, 낙지 등의 수산자원이 풍부하며 특히 꼬막생산지로 유명하다. 꼬막철인 10월~5월초가 되면 꼬막양식장에서 긁어온 산더미 같은 꼬막을 분류하고 손질하는 어부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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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만 (도보5분)
- 한국 남해안 중서부에 위치한 만(灣)으로 전라남도 순천시 인안동, 대대동, 해룡면 선학리와 상내리, 별량면 우산리, 학산리, 무풍리, 마산리, 구룡리 등에 분포한다. 넓게는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로 에워싸인 바다 전체를 순천만(順天灣)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순천시의 해안 하구 지역에 형성된 지형이 순천만이며, 여수시 여자도(汝自島), 고흥군 장도(獐島) 등을 포함하고 있는 바다는 여자만(汝自灣)이다.
순천만은 강물을 따라 유입된 토사와 유기물 등이 바닷물의 조수 작용으로 퇴적되어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전체 갯벌의 면적이 22.6㎢에 이르며 썰물 때에 드러나는 갯벌의 면적은 12㎢에 이른다. 순천의 동천(東川)과 이사천(伊沙川)의 합류 지점에서 순천만의 갯벌 앞부분까지 총면적 5.4㎢에 이르는 거대한 갈대 군락이 펼쳐져 있다. 오염원이 적어 다양한 생물이 풍부하게 발달되어 있으며, 흑두루미, 먹황새, 검은머리물떼새, 노랑부리저어새 등 220여종의 보호 조류가 발견되어 국제적으로 희귀한 조류의 월동지이자 서식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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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안읍성 (차량20분)
- 야트막한 산들이 감싸안아 분지를 만드는 자리에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역사 드라마의 촬영장을 찾은 것은 아닌지 잠시 착각하지만 이곳은 분명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이다. 수백 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한다면 조상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낙안읍성민속마을은 과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마을이다. 조선 중기 만들어진 석성 내부로 행정구역상 세 개의 마을 100여 가구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마한시대부터 이곳은 삶의 터전이었다.
토성으로 담장을 둘렀던 마을은 조선 중기 북벌운동으로 유명한 임경업이 군수로 부임하여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현재까지도 허술한 담장 하나 보이지 않는 석성은 1.4㎞를 이어가며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인위적으로 옛 모습을 갖춘 민속촌이나 명망 있는 양반들의 기와 가옥이 남아 있는 경우는 전국적으로 여러 곳이지만 초가집 노란 지붕으로 마을을 이룬 일반 백성들 삶의 터전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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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차량30분)
-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고찰로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보물 제395호 선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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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차량50분)
-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사찰로서 유서깊은 절이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처음에 이렇게 창건된 뒤 고려 인종(仁宗) 3년(1125)에 석조(釋照)가 대찰을 세울 뜻을 품은 채 세상을 뜨자, 1197년(명종 27) 승려 수우(守愚)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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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오픈세트장 (차량20분)
- 옛날 생각하며 도란도란 골목 산책
2006년에 방영된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야외 세트장으로 60-80년대 집들이 재현되어 있다. 지금까지도 ‘자이언트’, ‘에덴의 동쪽’, ‘제빵왕 김탁구’, ‘허삼관매혈기’ 등 시대극 단골 촬영지이다. 골목 골목 다니며 촬영장을 관람하고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찍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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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전통야생차체험관 (차량30분)
- 순천 야생 녹차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조계산 일원의 승주읍(선암사 인근)·송광면·주암면에서 생산되는 순천 야생 녹차는 전통기법을 이용하여 만든 이른바 전통 덖음차이다.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은 순천시에서 생산되는 차를 시음하고, 다도체험 등 다양한 체험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계산 선암사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전시관·제다체험실·사랑채(차음식체험실 및 작은 도서관)·강당·시음실 및 판매실·별채(숙박시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건물은 한옥으로 조성되었다. 전시관에서는 차의 역사·다기·차의 종류 및 효능·차의 제조과정·순천 야생 녹차에 관한 내용들을 전시하며, 덖음솥과 건조기 등이 갖추어진 제다체험실에서는 차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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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돌공원 (차량60분)
- 승주군을 합쳐 면적이 방대해진 순천시는 조계산도립공원과 송광사, 선암사 등의 명찰, 낙안읍성 민속 마을, 대대포구 갈대밭 등이 있어 관광객들을 많이 불러 모으는 곳이다.
송광면의 주암호반에 조성된 고인돌 공원은 주암댐 건설(1984-1991)로 인해 수몰지역에 있던 선사 유적을 한 곳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수몰지역으로는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 유역 순천, 보성, 화순 3개시군 내 인접 9개면 49개리로 광활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 산재해 있는 많은 문화유적들을 계속 보전, 전승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석기 유적 4개소, 집단 취락지 4개소(200기), 고인돌 24개소 400기, 백자 도요지 1개소, 선돌 4기 등이 발굴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고인돌군을 이전, 복원하여 후세들의 역사교육장과 도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 곳 18,000여평의 부지 위에 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고인돌 140여기와 선사시대 움집 6동, 구석기시대 집1동, 남북방식 모형 고인돌 5기, 솟대, 선돌들이 전시된 야외전시장과,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해 놓은 유물전시관, 전남지방 시대별 묘제 변천과 영상실을 겸한 묘제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원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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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왜성 (차량20분)
- 1999년 2월 26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49호로 지정되었다가 지방기념물로 격하된 것이다. 면적은 188,428㎡이고 이름이 왜교성, 왜성, 왜성대, 왜교, 예교(曳橋), 예교성, 망해대(望海臺), 신성리성, 순천성 등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순천 왜성은 정유재란(1597) 당시 육전에서 퇴진한 왜군 선봉장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도다카도라[堂高虎]가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이다. 또한 침략 최정예 부대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1만 4000여 명의 왜병이 주둔하여 조·명 수륙연합군과 두 차례에 걸쳐 최후·최대의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